100원짜리 자두 한개
Posted by 미스란디르
어렸을적 연희동에 살았어요. 성산회관이라고 하면 아실지 모르겠네요. 205번이 지나가는 버스정류장이에요. 지금은 없지만, 당시엔 성산회관이란 큰 음식점이 있었죠. 그 음식점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연희동을 가로지르는 큰 골목이 있었어요. 그 길을 끝까지 가서 길을 건너, 큰길을 따라가면 연희국민학교가 나왔지요.
뭐, 길은 아무래도 좋아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쌍팔년도.
성산회관을 지나 왼쪽으로 도는 그곳. 골목길이 시작하는 그곳에는 과일 장사 아저씨가 있었어요. 무슨 과일을 팔았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손을 잡고 따라가면서 참 맛있는 냄새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날은 국민학교 입학식이었어요. 처음으로 그 골목을 본 날이었고, 모든 것이 새로웠죠.
그리고 시간은 흘러, 더운 날이 찾아왔어요. 과일장수 아저씨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지나갈 때면 코를 찌르는 향기가 풍겨 왔을거에요.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요, 하루에 백원씩 용돈을 받았던 것은. 아니면 원래 받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20년이 지난 시절의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는 못해서,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쳐요.
하루치의 용돈인 백원을 주고, 빨간색의 주먹만한 과일 한개를 샀어요. 그 과일은 무척 달콤한 냄새가 풍겼고, 껍질을 까면 노란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지요.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너무나도 시원해서 좋았던것 같아요. 그렇게 매일 매일 자두 한개씩을 사먹으면서, 자두가 참 좋아졌어요.
그리고 과일 장수 아저씨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정말이지 인간의 기억력은 한심한 물건이라,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네요. 몇가지 기억나는 이야기라면, 음.... 가끔 아저씨가 저를 놀렸던 것 같아요. 왠지는 모르겠어요. 집에 오는길에 물건을 잃어버리고 막 울면서 아저씨에게 하소연을 한 적도 있는 것 같고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스스럼 없이 얘기하기도 했을거에요. 아마도.
그렇게 거기서 자두를, 혹은 100원짜리 무언가를 사먹는 것은 일상이 되었어요. 겨울의 추운날에는 아저씨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다음해가 되고 아저씨는 또 나오셨어요.
그리고 국민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인지, 혹은 중학교를 들어가서부터인지, 아저씨는 더이상 그곳에 있지 않으셨어요.
이것이 지금 남아있는 과일장수 아저씨와의 기억의 전부에요.
지금 저는 자두가 한개 먹고 싶어졌어요.
